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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뱅자맹 주아노의 얼굴, 누나는 내게 물었다

by 이야기캐는광부 201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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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때였다. 어느날 거울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친누나가 물었다.


"나 예뻐?"

"응.."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꼭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예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뉘앙스였다. 누나는 재차 물었다.


"예쁘냐고?"

"응!!!"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응, 누난 정말 예뻐'라고 말을 할 걸 그랬다. 그런데 귀찮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왜 그런 걸 묻는거야?!!!!'


나도 거울을 들여다본다. 콧털을 자를 때, 면도를 할 때, 샤워하고 난 후. 불어난 몸뚱이를 보다가는 고개를 홱 돌리고 말지만. 수십번 거울을 봤으나 잘생기지는 않았다. 물론 얼굴 중 자신있는 부위는 있다. 말하기는 창피하다. ㅋㅋㅋㅋ


뱅자맹 주아노의 책 '얼굴-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를 보다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래 내용을 당시 읽었더라면 좀더 성의있게 누나한테 말해줬을 것을.



우리 사회에서의 이형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여성에게 있어 거울의 기능'을 다룬 시몬 드 보부아르의 분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기 위해 거울 앞에서 일정 시간을 보낸다. 여성의 바쁜 하루 생활 중 드물게 사적인 시간의 일부다. 


비밀스러운 자신의 방에서, 프랑스어로 '프시쉬'라고 하는 것 앞에서, 거울이 마치 영혼으로 통하는 관문인 양, 여자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신만의 이미지로 돌아간다. 물론 그녀가 거울 속에서 바라보는 것은 평생 구축해온 사회적 이미지이고, 그 이미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상대적 문화 코드에 의해 좌우된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녀는 그 이미지를 확인하고, 그 이미지에 공을 들이고, 또 한편으로는 더 나아 보이려고 애쓰는데, 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한 여성으로서 확인받기 위해서다. 


그녀는 거울 속 이미지를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상에 부합시키려고 애쓴다. 이때 거울의 기능은 정확히 백설 공주 이야기에서 사악한 새엄마가 마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거울아, 거울아, 이 왕국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하고 물을 때와 같다. 새 엄나는 거울에게 그 이미지를 확인(또는 부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확인 과정에서 얼굴은 가장 중요하다.

-127쪽-


얼굴은 개인으로서의 '나'를 두드러지게 해주는 내 몸의 출발점이자 내 존재를 부각시키는 육체적인 서명이다. 나의 특이점은 남들과 다른 신체적 특징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는 이 순수한 차이점을 어떤 집단에 속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정체성은 어느 정도의 동일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문신이나 피어싱, 상처문신, 화장 등과 같은 상징적이고 사회적인 표시를 하기 위한 바탕으로 얼굴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얼굴은 내가 속한 집단과 나의 주관성이 만나는 곳이다. 내 사회적 환경이 내게 부여하는 역할과 표지가 얼굴에 새겨진다. 

얼굴은 사회가 내게 씌우는 가면이자 내 개성이 담긴, 움직이는 육체적 성소다. 이 흥미로운 양면성은 모두 얼굴이 접점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나온다. 즉 나와 세계, 나와 다른 사람들, 심지어 나와 나 자신 간에 이루어지는 소통의 가변적이고 변화하는 도구로서의 측면을 말한다. 얼굴은 내게 주어졌고, 나는 얼굴을 바꾸거나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 하지만 선택은 할 수 없다. 내 것이지만 완전히 내 것은 아닌 셈이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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