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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2017 독서노트(23)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

by 이야기캐는광부 2017.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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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과 봄, 행복과 절망,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평화를 체험했다."-책 서문-


프랑스의 여행작가 실뱅테송은 문명의 중심에서 수십 발짝 벗어나고싶어했다. 그래서 시베리아 동남부에 위치한 바이칼호로 떠났다. 그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겨울과 봄을 거쳐 6개월간 자연과 마주했다. 책<희망의 발견:시베리아의 숲에서>는 은둔의 기록이다. 혼자 있을 때의 나. 나의 고독을 거울에 비추고 있는 듯한 책이다. 실베테송처럼 한번쯤 떠나고 싶다. 훌훌 털어버리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가 만든 틀에 갇히지 않고.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내가 만약 무궁화호 열차라면 잠시 철로를 일탈해, 때로는 뱀처럼, 때로는 논바닥을 기어들어가는 미꾸라지처럼,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달리는 늑대처럼, 거친 자연으로 떠나고 싶다. 가끔 지하철을 탈 때 가슴이 답답하다. 지하철 창문 밖은 깜깜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모습이 잔영처럼 비친다. 어두운 굴속을 가는 듯한 느낌. 삶은 그런 것인가. 그러다 터널 끝 빛을 발견하고 숨을 크게 몰아쉴까.


한참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다가, 어느날은 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보려고. 


"호수로 열린 창문하나로 나의 삶은 충분하다."실뱅테송은 말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창문없는 18만원 짜리 고시원에서. 창문있는 20만원짜리 고시원으로 방을 옮겼을 때. 창문 하나가 생기니 삶에 빛 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지.


훌훌 쉽게 읽어내려가다가, 곳곳에서 오두막집이 보였던 책. 잠시 그 오두막으로 들어가 육포를 씹으며 생각에 잠기고 싶게 만드는 책. 겨울날 카페에서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도 좋을듯하다. 실제로 시베리아 오지로 떠날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



숲속 생활은 일종의 도피일까? '도피'란 습관의 늪에 빠져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명의 약동에 갖다붙이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놀이? 물론이다! 한 궤짝의 책, 그리고 스노슈즈까지 준비해가지고 호숫가의 숲에서 얼마 동안 파묻혀 살아보는 이런 식의 자발적 체류를 놀이 말고 달리 부를 수 있을까? 구도 행위? 너무 거창한 표현이다. 실험? 과학적인 의미의 실험을 말하는 것이라면, 맞다. 오두막은 일종의 실험실이다. 자유와 침묵과 고독에 대한 욕구들을 올려놓는 실험대이다. 하나의 느린 삶이 발명되는 실험의 장이다.

-46쪽-


사회는 은둔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도피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 없이 잘들해봐"라고 내뱉고서 훌쩍 떠나버리는 은둔자의 그 가벼움을 비난한다. 은둔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외치고 떠나 버리는 것이다. 은둔자는 문명의 소명을 부정하며, 살아 있는 비판자가 된다. 그는 신성한 사회계약을 파기한다. 바람 부는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나버리는 이런 인간을 기존의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59쪽-


내가 떠나온 세계에서는 타인들의 존재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것은 우리를 규범 속에 묶어둔다. 이웃들의 눈이 없으면 우리는 덜 우아하게 행동할 것이다. 만일 식사를 혼자 한다면? 부엌에 혼자 서서, 식탁을 제대로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것을 행복해야하며, 차가운 통조림 라비올리를 깡통째로 게걸스레 퍼먹는 것을 즐기지 않을까?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오두막에 살면, 생활이 느슨해질 위험이 있다. 모든 사회적 요구에서 벗어나 혼자 지내면서, 자신의 이미지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담배꽁초가 널린 침대에서 몸을 벅벅 긁는 시베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로빈슨 크루소도 이런 위험을 잘 알았다. 그래서 추해지지 않으려고 매일 저녁-마치 앞에 손님이 있는 것처럼-정장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108쪽-


자연의 고독과 나의 고독이 마주친다.

-115쪽-


얼음속에 얽힌 저 혈맥. 어떤 생각의 실처럼 느껴진다. 만일 자연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풍경들은 자연이 하는 다양한 생각들의 표현이리라. 에코 시스템들 각각에 감정을 하나씩 부여함으로써 '에코 시스템의 정신생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숲의 우울함, 산골짝 시내의 즐거움. 소택지의 망설임. 우듬지의 엄격함. 찰랑이는 물결의 귀족적 경박함...'풍경의 인간중심 해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리라.

-160쪽-




이미지출처:http://siberi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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