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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2017 독서노트(55)유홍준의 안목, 미를 보는 눈

by 이야기캐는광부 2017.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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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흐뭇해지고, 마음의 묵은 때가 씻기는 듯하다.


희고 고운 살결. 하얀 눈 밭. 순박한 한국인의 정. 넉넉한 마음씨. 시골의 아늑함. 조선의 얼굴. 한국인의 오랜 추억. 한국인의 바탕. 우리나라 자연의 바탕. 한국 미술의 저력. 




달항아리를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유홍준은 책<안목>에서 달항아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이란 제목을 달았다. 혜곡 최순우는 달항아리를 보면 잘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듯한 흐뭇함이 있다 했단다.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55쪽에 수록된 혜곡 최순우 글-


달항아리 예찬론자들은 많았다. 책에서 밝히듯 미술사가 삼불 김원용(1922~1993)은 백자대호를 설명하는 글에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단다. 


조선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 白衣의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뒤뚱거리나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白衣의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 古今未有의 한국의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59쪽 김원용의 <백자대호>-


삼성리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백자를 마주한 적이 있다. 순간 마음에 큰 달덩이가 비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허허로운 마음을 채우는 충만감. 백자를 구워내며 우리 문화의 결을 소중히 어루만질 줄 알았던 그 도공은 누구였을까.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훗날 우리 문화가 어두운 길을 걸어갈 지언정, 조선 백자가 밤하늘의 달덩이처럼 캄캄한 길을 비춰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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