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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영혼을 치유하는 일기장

by 이야기캐는광부 201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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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많이 내린다. 빗소리와 함께 책장을 넘기다보면 왠지 모르게 책이 잘 읽힌다. 빗소리가 주는 특유의 경쾌한 리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린 그루웰 지음)>다. 이슬비처럼 천천히 가슴을 적셔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속에는 미국 윌슨고등학교(캘리포니아주 로이치에 위치)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10대 학생들이 릴레이 일기를 쓰면서, 상처받은 자신들의 영혼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잔잔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 문제아들이 일기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스스로 영혼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평소 세상으로부터 소외 받았던 그들은 저마다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성폭행 당한 소녀 이야기, 지역 갱단이 쏜 총에 맞아 동생을 잃은 한 소년, 인종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흑인 소년, 매일 마약에 찌들어 살았던 소년,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밑에서 자란 소녀 등등. 그들은 하루하루 폭력과 편견 그리고 상처가 아물지 않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에린 그루웰(윌슨 고등학교 교사)은 달랐다.

                     ▲ 자유의작가들을 탄생시킨 에린 그루웰 선생님

그런 그들에게 진심어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들로 하여금 직접 일기를 쓰게 해,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하루하루 자신들의 상처를 일기로 써 나가면서 학생들은 자기자신을 존중하고 타인들의 아픔에도 공감하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자신들의 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 일기의 내용을 발표하면서 어떻게 하면그 아픔을 다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유의 작가들'로 불렸고, 그 이야기가 <자유 작가들의 일기>라는 책으로 탄생했다.

                      ▲ 즐라타(가운데 투버튼 코트)와 자유의 작가들

러한 일기의 힘은 예전에도 있었다. 바로 <안네의 일기>다. 2차세계대전동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았던 한 소녀 안네 프랑크가 15살에 죽기전까지 썼던 일기장이다.
 

그 이후에는 1994년 유고슬라비아 내전동안 '즐라타'라는 소녀가 쓴 <즐라타의 일기>가 유명하다. 이 두 소녀는 일기를 쓰면서 전쟁의 아픔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현실을 견뎌내었다. 모두 윌슨고등학교 '자유의 작가들'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그 중 즐라타는 윌슨고등학교 자유의 작가들과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놀랍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던 유명인사를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구절이 바로 그 이야기를 담은 마흔 일곱 번째 일기속에 있다.

두 어명의 어른들이 즐라타에게 크로아티아인인지, 무슬림인지, 아니면 세르비아인인지 물었다.
(중략)
질문을 받은 즐라타는 주위를 둘러 본 뒤, 우리를 바라보며 짧게 대답했다.
"저는 그냥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그 말이 옳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또 한 명의 개인으로 받아들이며 될 것을, 서로 인종을 가리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나는그 질문을 한 사람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어디에 속하든 그녀가 달라지는 게 있나요?"라고 말이다.

-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 Diary47 中에서-

이 구절을 읽다보면 자유의 작가들에게 씌워졌던 '문제아'라는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문제아가 아닌 그저 행복할 권리가 있는 '그냥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누가 그들을 문제아로 규정지을 권리가 있는가?

학생들은 '자유작가의 일기'를 쓰면서,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다른 친구들도 가지고 있으며, 그 아픔을 결코 혼자 이겨나갈 수 없을 것임을. 다함께 보듬고, 이해하고, 아껴줄 때 그 영혼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다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도 함께.

한편, 에린 그루웰같은 훌륭한 교사를 만날 수 있었던 그들이 부러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안타깝게도 필자는 그런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 .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가슴 속 이야기보다 학생의 등수와 성적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꿈보다는 반 전체의 성적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분명 선생님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 개개인의 교육철학에 학교라는 집단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수도 있으므로.
대한민국 교육에 있어서 학생과 선생님들 모두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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