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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에세이/일상끄적

공룡들과 김삿갓에게도 첫 눈이 내렸겠지요?

by 이야기캐는광부 201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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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제가 LG디스플레이 블로그 (http://blog.naver.com/youngdisplay/60119762734)
에 실었던 글입니다. 대전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네요. 다시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살짝 편집해서 다시 올립니다.^^
 

하얀 눈이 내리니, 별의별 눈 이야기를 해볼까요?
 
안녕하세요.
흰 눈처럼 순수하지 못한 남자 이야기캐는광부 김기욱입니다.
지금 대전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네요. 이 세상에 첫눈이 온 것은 언제일까요?


공룡이 살았던 시대에도,
인류가 아직 나무와 땅을 오가던 영장류였을 때도 첫눈은 내렸겠지요.
 
저희 외할머니가 꽃다운 처녀였을 때도,
아버지가 초등학교 개구쟁이였을 때도 첫눈은 어김없이 찾아왔을 겁니다.


200여 년 전에,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도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눈을 주제로 이런 재미난 시를 썼지요.
 
<雪 - 一>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 천왕씨가 죽었는가 지황씨가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 온갖 나무와 산들 상복을 입었구나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래조) - 내일 만일 태양이 조문 온다면
家家첨前淚滴滴(가가첨전루적적) - 집집마다 처마앞에 방울방울 눈물 흘리리
 
흰 눈을 상복으로, 녹아내리는 눈을 집집마다 흘리는 눈물로 재치 있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지를 발휘하고 있네요.
 
또 우리 조상들은 눈을 다양하게 표현해 왔습니다.
 
                         가랑눈 : 가랑비처럼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
                         가루처럼 내린다고 해서 가루눈이라고도 한다.
                         함박눈 : 함박꽃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소나기눈 : 소나기처럼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 소낙눈'은 '소나기눈'의 준말.
                         싸라기눈 : 빗방울이 내리다가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싸라기 같은 눈
                         자국눈 : 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조금 내린 눈
                         살눈 : 살짝 얇게 내린 눈
                         숫눈 : 눈이 와서 쌓인 그대로의 눈.최초로 밟아 자국을 내보고 싶으며
                                  눈 도장도 찍어 보고 싶은 유혹 을 느끼게 되는 순결한 눈.
                         잣눈 : 한 자 또는 한 길(사람의 키 정도의 깊이나 높이)이 되게 많이 내린 눈
                         길눈 : 잣눈과 같은 뜻
                         첫눈 : 겨울이 되어 처음으로 내리는 눈.
                         밤눈 : 밤에 내리는 눈
                         도둑눈: 밤 사이에 내리는 눈으로, 아침에 일어나
                                     ‘눈이 왔구나’하고 탄성을 자아나게 되는 눈
                         눈발 : 발처럼 줄을 이어 죽죽 내리는 눈
                         눈꽃 : '설화'로 나뭇가지 따위에 꽃이 핀 것처럼 얹힌 눈이나 서리
                         포슬눈 :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눈
                         눈보라 : 바람에 날려 세차게 몰아치는 눈
                         눈갈기 : 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
                         눈안개 : 눈발이 자욱하여 사방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부옇게 보이는 상태
                         마른눈 : 비가 섞이지 않고 내리는 눈
                         진눈깨비 : 비와 섞여서 오는 눈. 진눈이라고도 한다
 
다 말하려니 숨이 찹니다.
어렸을 적 함박눈이 내리길 기도했는데, 진눈깨비가 내려 실망한 적도 있었지요.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눈꽃을 보며 서로 사랑을 키우기도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60만 국군장병들은 눈이 오면 똥 내린다고 표현하고 있을 겁니다.
  

 눈이 내리면 이른 아침부터 나가서 쓸어야 했으니까요.
 

사단장님 지시사항으로 땅바닥의 뼛속 까지 눈을 박박 긁어 내야했습니다.
말년병장들은 저쪽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노가리를 까고,
이등병은 눈삽 들고 우주왕복선처럼 수십 번 지구(?)를 왕복해야 했지요.
아 생각하기도 싫으니 이만 멈추겠습니다.ㅎㅎ^^
 

그래도 북극의 에스키모 인들은 이 똥덩어리 같은 눈을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하기도 했지요.
 
gana -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눈
aput - 땅에 내려 앉은(쌓여 있는) 눈
pigsirpog -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눈
gimugsug  - 바람에 휘날려 무더기로 쌓여 있는 눈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을 가졌던 겁니다.
 그저 눈이라고만 부르면 눈도 참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똥이라고 부르면, 눈 입장에서는 정말 슬프겠네요.
 
한편,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부터 첫눈이 내리면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눈을 종이에 봉해서 약이(藥餌, 약이 되는 음식)라 하여 보내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턱을 내게 하는 풍습이지요.
 

<조선왕조실록>에 1418년(세종 즉위년) 정종과 태종이 이러한 장난을 했다는 사실과,
그 풍습을 소개하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또 매년 첫눈이 내리면 신하들이 임금에게 하례(인사를 올림)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준비한 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젠 창밖의 눈이 좀 그쳤습니다.
아니 지금도 계속 내리고 있는 곳도 있겠군요.
 
어느 까페에서는 김현식의 '눈내리는 겨울밤'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내리던 겨울 밤 수줍게 고백한
그대 사랑이 내 곁을 떠났을 때
내 마음 외로움에 달빛을 바라보며
그대 그리네 그대를 생각하네~~
-김현식의 노래가사 中에서-
 
갑자기 우울해지죠?^^ 죄송합니다.
시대의 명곡(?) 창밖을 보라을 보내드리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눈에 관한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로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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