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독서노트(456)침묵의 세계 노인은 죽음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침묵의 일부를 자기 몸에 지니고 있다. 노인의 움직임은 아주 느린 것이 마치 자신이 향해가고 있는 침묵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은 마치 이제는 좌우에서 말이 아니라 죽음이 솟아오르는 난간 없는 다리를 걷는 듯이 멈칫거리며 걷는다. 자신의 침묵을 가지고서 노인은 죽음의 침묵을 향해서 간다. 그리고 그 노인의 최후의 말은 그 노인을 삶의 침묵으로부터 저 너머 죽음의 침묵으로 실어가는 한 척의 배와 같다. -침묵의 세계, 137~138쪽 편- '침묵'을 주제로 어떻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지? 와...
독서노트(455)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모리 교수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 죽어가는 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불치병에 걸렸다면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져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낼 것인가? -지금 삶은 진정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건가? 뭔가 빠진 건 없나? -인생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사랑을 나누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아나? -사실 가족 말고는 사람들이 딛고설 바탕이나 안전한 버팀목이 없지. 가족의 뒷밤침과 사랑, 애정과 염려가 없으면 많은 걸 가졌다고 할 수 없어.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네.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거지. 자네는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의 가족이 되주고 있는가? -자식을 갖는..
독서노트(454) 2019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오은의 '나' 문득,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로 잡히는 시. 오은의 '나'. 2019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에 실렸다. 나 오은 혼자 있고 싶을 때는화장실에 갔다 혼자는혼자라서 외로운 것이었다가사람들 앞에서는왠지 부끄러운 것이었다가 혼자여도 괜찮은 것이마침내혼자여서 편한 것이 되었다 화장실 겨울은 잘 닦여 있었다손때가 묻는 것도 아닌데쳐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아무도 보지 않은데도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볼꼴이 사나운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처럼웃다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는 표정처럼웃기는 세상의 제일가는 코미디언처럼 혼자인데화장실인데 내 앞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다
2018 독서노트(142)필사의 기초, 조경국 이 얇은 책가 주는 독서의 기쁨은 실로 크다. 필사의 기초부터, 필사를 해야하는 까닭. 필사를 습관처럼 했던 역사속 인물들의 이야기. 필사와 관련된 각종 책들의 목록이 담겨있다. 가끔 필사를 하기도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니 다시 옮겨적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물론 만년필을 구매하고싶은 충동도 일렁인다. 나는 블로그에 필사를 한다. 물론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필사보다야 그 맛은 떨어지겠지만... 필사는 가장 순수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이룬 문장의 활자를 그대로 써서 옮기며 곱씹는 행위죠. 더디고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만 어떤 독서법보다 큰 만족감을 줍니다.-39쪽- 추사 김정희는 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서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취는 사람마다 자신이..
2018 독서노트(141)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바람 없는 맑은 날 바라본 바다와, 맑고 파도가 거친 날 바라보는 바다가 똑같을 순 없다. 물때에 따라서도 바다의 느낌이 달라진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보아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것 같은 평범한 풍경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풍경을 떠올리고 그 순간을 기다리다 보면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이 빈약한 사진가는 세계적인 명승지를 찾아 나선다 해도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사진으로 작업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 가서 풍경을 직접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시간과 돈이 없어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작품이라고 과대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보를 위한 사진이라면 오히려 동영상이 효..
2018 독서노트(140)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윤동주, 전문- 다른 사람은 몸이 아프면서 동시에 삶이 아픈 ..
2018 독서노트(139)먹이는 간소하게, 노석미 그림에세이 노석미 작가의 그림에세이를 읽었다. 낮에 막걸리 먹고, 낮잠을 잔 후에, 부시시한 모습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편하게 한장 한장 넘기며 작가의 그림과 함께 요리 레시피를 만날 수 이다. 밥 한상을 차려먹은처럼 마음이 푸짐해진다. 요리를 배워야할까보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신 쑥개떡. 아...저렇게 만드는 구나. 참기름을 바른 쑥개떡은 정말 맛있다. 주로 추석명절에 먹었던걸로 기억한다. 쑥개떡을 오래 씹다보면 살짝 단맛도 나는데, 이런 맛을 좋아했던 것 같다. 쑥개떡을 빚었던 순간도 떠오른다.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음식이 바로 쑥개떡이다. 노석미 작가의 그림에세이. 이 에세이를 주방에 놔둬볼까.ㅎㅎ
2018 독서노트(138)빵 고르듯이 살고싶다 나도 가끔은 빵 고르듯이 살고 싶다. 지금 이 마음.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오늘의 빵'을 찾는 마음. 쟁반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풍요롭다. 이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빵집을 나간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회의 시간의 내가 떠올랐다(물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손으로 고를 수 없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인생 같았는데 그 순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답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이 맞아.' 아직까지 빈 쟁반을 든 처지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되었든 내 삶의 온갖 선택 사항들도 이런 마음으로 고를 수는 없을까?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쟁반을 든 나'라는 인물로 한 발 한 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