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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주말 오후 느긋느긋 느릿느릿 주말 오후. 느긋느긋. 느릿느릿. 빨랫대에 널브러져 있는 파아란 청바지처럼, 동물원에서 낮잠을 자는 사자와 호랑이들처럼 오래도록 널브러져 있는 게 좋다. 오후의 햇살이 거실 방바닥을 침범해 만드는 그림자. 제법 쌀쌀해진 가을바람의 살결. 느긋하게, 느리게 시간을 바라보며 오후의 게으름을 즐긴다. 나만의 사파리. 삶의 고요함. 커피 한잔을 닮은 주말 오후. 벗어놓은 양말. 아...토요일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이 안왔으면 하는 바람. 빨래들이 바삭바삭해지는 느낌. 햇살도 느긋느긋 비친다.
2018 독서노트(82)세탁기와 빨래, END. 띠.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 띠리리리. 세탁기는 빨래가 끝났다는 걸 소리로 알려준다. 친절하게 'end'라는 단어도 표시해준다. 오늘도 역시 하루의 시름과 고됨과 우울을 세탁기 속으로 벗어던진다. 슈퍼타이를 넣고, 샤프란을 세제함에 채운다. 덮개를 닫고 전원버튼을 누른다. 동작버튼을 꾸욱. 하루의 시름과 고됨과 우울을 몇 번 흔들면서 세탁기는 이들의 무게를 잰다. 물을 얼마만큼 부어야할지, 몇 분동안 빨래를 돌려야 할지 판단한다. 차가운 물이 흘러들어온다. 바지와 팬티와 양말, 수건이 젖는다. 베란다 불을 끄고 책상 앞에 앉는다. 웨웨웽. 웨웨웨엥.웨웨웽. 웨웨웨웽.들컥. 딱. 부르르르르르쏴아아아. 세탁과 탈수. 과연 깨끗해졌을까. 구겨진 바지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름과 고됨과 우울. 띠. 띠리..
2018 독서노트(80)멍하니 하루를 널어놓은 빨래는 검다검게 흔들린다문이 열려있다빈 방은 검다후라이팬은 탔다설거지는 쌓였다선풍기는 덥다바람은 까맣다비닐봉지는 새카맣다음식물 쓰레기가 담겼다오래 들여다보니까맣지 않다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난다냉장고의 뼈대씽크대의 선마음은다 상복을 입고 산다속이 검다아니 하얗다 노랗다희미하게 드러난다아파트어느 층은 켜 있고어느 층은 꺼 있다까맣고밝고깜빡거리고형광등을 갈 때가 됐다 초점이 없다눈을 감는다다시 뜬다초점이 흐리다눈을 감는다다시 뜬다천장은 까맣다오래된 방은그을렸다그을렸다
2017 독서노트(60)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알쓸신잡2 유현준 건축. 나를 세우는 일. 건물을 올리는 일. 월급을 올리는 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 무언가를 짓는 일. 다 어려운 것 같다. 가을 날 읽었다. --------------------------------------------------- 하나의 훌륭한 도시가 만들어지기위해서는 건축물도 중요하고 자연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은 도시환경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런 면에서 홍콩의 도시 속에 널린 빨래를 쳐다보자. 그 건축물은 빈민촌에 가까운 풍경이지만, 빨래가 도시에 컬러를 입히고 생동감 넘치게 해 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들은 모두가 오피스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