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독서노트(483)사소한 부탁, 황현산 산문집

책노트

by 이야기캐는광부 2020. 6. 13. 14:01

본문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생각이 어떤 것이건,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

정의라는 말이 없다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제도가 달라졌을터인데, 정의를 '저스티스'라고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를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온갖 역사적 노력과 그 말을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문에서 제 나라 말을 소외시킨다는 것은 제 삶과 역사를 소외시키는 것과 같다.

-101쪽-

 

한 인간의 내적 삶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그 점에서도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169쪽-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이면 어느 것이건 충분히 오랫동안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살핌으로써 이제까지 아무도 본 적도 말한 적도 없는 어떤 모습을 거기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어느 것에나 아직 탐구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응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미 생각했던 바의 추억에 의지해서만 우리의 시선을 사용하는 데에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도 많게건 적게건 미지의 것을 담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자.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우리에게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 앞에서 떠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독창적이 된다.

더 나아가서, 온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알의 모래나, 두 마리 파리나, 두 개의 손이나, 두 개의 코가 없다는 진실을 말하고 나서, 그는 나에게, 어떤 인물이나 어떤 사물을 단 몇줄의 문장으로 뚜렷이 개별화하고, 같은 종족의 다른 모든 인물이나 같은 종류의 다른 모든 사물과 구별될 수 있도록 표현하라고 촉구했다.

-145쪽, 모파상의 소설 <피에리와 장> 서문 인용-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