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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산문집<라면을 끓이며> 밑줄

책노트

by 이야기캐는광부 2015. 11. 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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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라면을 끓이며



11월 15일, 꿀 주말. 김훈의 산문집<라면을 끓이며>를 펼쳤다. 읽다 말고.

짜파게티 2봉지를 사서 끓여먹었다. 4분의 기다림은 설렘이었다.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면을 후루룩 삼켰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면 위에 올렸다. 혼자 있는 자취방에 쩝쩝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쩝쩝. 후루룩. 짭짭. 후루룩. 쩝쩝. 자취남이 삶의 기운을 회복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 산문집에 나오는 문장들은 밥알같다. 꼭꼭 씹어먹으면 좋다.  


김밥의 가벼움은 서늘하다. 크고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15쪽-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는가. 그 영육 복합체는 유년의 천막학교에서 미군들한테 얻어먹은 레이션(전투식량)의 맛까지도 흔들어 깨운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17쪽-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은 남기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속으로 배어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센 불을 쓰면, 대체로 실패하지 않는다. 식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는 분말스프를 3분의 2만 넣는다.....(중략)....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 젓가락으로 먹는다.

-29쪽~31쪽-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시위현장의 점심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황사 바람 부는 거리에서 시위군중의 밥과 전경의 밥과 기자의 밥은 다르지 않았다. 그 거리에서, 밥의 개별성과 밥의 보편성은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밥이 그러할 것이다.

-75쪽-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사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76쪽-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낱알들이 입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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