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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일개미 자서전, 직딩들이여 개미굴에서 잘 있는가?

by 이야기캐는광부 2016.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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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자서전



"세상에 태어나서 뭘 하지?"

"꿈지럭대는 거지, 꿈지럭대는 거라구."

-알베르 카뮈, 작가일기-


첫 장을 넘기자 카뮈의 작가일기가 딱! 맞어, 맞어! 격한 공감속에서 다음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책을 펼쳤다. 

저자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궁금하던 찰나, 몇 장을 넘기다보니 '여자'로 드러났다. 


책 제목이 '일개미 자서전'이다. 직감했다. 직딩의 이야기로구나. 독립출판물 서점 '도어북스'(대전시 중구 대흥동)에서 산 책이다. 도어북스 주인장님의 추천으로 집어든 73쪽 분량의 책.


저자는 개미굴(직장, 회사)에 여러번 들어갔다가 여러번 나왔다. 일개미로 살고싶지 않아 조직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나보다.


'소개팅'이란 제목의 글을 읽다가 혼자 낄낄 웃었다. 여자의 입장에서서 썼을지라도 충분히 공감갈 만한 내용이었다. 나도 소개팅을 몇차례 해봤다. 난생 처음 보는 여자와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 않는 경험. 그 테이블이 때로는 집 앞에 흐르는 갑천의 폭보다 더 넓게 느껴진 적도 있다.


"분명 매번 다른 사람과 만나는데, 대화는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진다. 뭐 먹을까요? 파스타 어떠세요? 취미활동 해요? 전공은 뭐죠? 주말은 어떻게 보내요? 혈액형이 뭐예요? 한번 맞춰 볼까요? 생일은 언제에요? 별자리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죠? 그 영화 봤어요? 그 기사 읽었어요? 회사는 어때요? 일 재밌어요? 야근 많이 해요?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죠? 여행 좋아해요? 어디어디 가봤어요?…그만 일어날까요?"


격공. 격한 공감. 특히 생전 처음 본 소개팅녀와 밥을 먹을때는? 밥알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에서 미끄럼틀을 타는지 모르겠던 시간.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한마디로 결혼 적령기인데 싱글이면서 내 취양인 이성을 개미굴에서 포착할 확률은 히말라야 정상의 산소만큼이나 희박하다. 이미 '훈남 조혼의 법칙'이 한 차례 회사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이미 '훈남 조혼의 법칙'이 한 차례 회사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시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할 확률로 옆 부서에 매력적인 싱글 남성이 입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가 내게 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큐피트와 삼신할미가 동시에 내 편이 되어준다 한들, 성적 긴장감이라곤 요만큼도 감돌지 않는 사무실에서 무슨 수로 메마른 가슴에 부싯돌을 당겨 사랑을 활활 불태우겠는가. 가십거리를 못 찾아 안달 난 직장 동료들의 집요한 시선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44쪽-


'훈녀 조혼의 법칙'도 세상을 휩쓸고 있지는 않을까. 내 마음속 동굴이 하나 있다. 원시인들이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잊어버렸나보다. 사랑의 부싯돌도, 열정의 부싯돌도. 20대 청춘을 떠나보내고나서 활활 타오르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일개미 자서전은 직딩들을 위로해준다. 무엇보다 여자 직딩의 마음을 보다 잘 어루만져 줄지도...


또 말을 건다.


"직딩들이여, 개미굴에서 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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