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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채식주의자> 무심코 밑줄

책노트

by 이야기캐는광부 2016. 7. 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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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강의 소설<채식주의자>를 읽다가 무심코 표시를 해둔 부분이다. 무슨 의미인지도, 어떤 장치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냥 느낌만으로 밑줄 그었다. 몽고반점, 욕망, 예술, 정신병, 꽃, 나무, 육식, 채식주의자, 고기, 개, 식물, 폭력….몇몇 단어들이 머릿속에 표류하고 있다.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조각난 단어들을 이어붙여 책 감상평을 쓰려다 실패했다. 

소고기를 이빨로 씹어먹을 때의 육즙. 두툼한 돼지 목살을 구워 씹을 때의 식감. 상추로 감싼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한 입에 쏙 넣을 때의 쾌감과 행복감. 이것들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을 때 소와 돼지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맛있다'는 혀의 감각과 뇌의 반응뿐이다. 

음식은 폭력인가. 뜨거운 불판에 돼지 목살을 굽는 행위는 폭력이 될 수 있는가. 직접 돼지를 잡아 죽이지 않았으니 폭력은 아닌가.  고기는 행복인데. 나는 결코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채식은 식물에 대한 폭력일 수는 없는가. 고기처럼 똑같이  뜯고,씹는데...? 작가가 말하는 '채식주의자'의 뜻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끌어나가기위한 상징적인 도구일 뿐인가? 채식은 폭력에 대한 저항인가. 남성성에 대한 저항인가. 채식주의자든 육식주의자든 욕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그저 똑같은 사람일뿐인가. 아따,,어렵다.


"이제는 오분 이상 잠들지 못해. 설핏 의식이 나가자마자 꿈이야. 아니, 꿈이라고도 할 수 없어. 짧은 장면들이 단속적으로 덮쳐와. 번들거리는 짐승의 눈, 피의 형상, 파헤쳐진 두개골, 그리고 다시 맹수의 눈, 내 뱃속에서 올라온 것 같은 눈. 떨면서 눈을 뜨면 내 손을 확인해.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제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43쪽-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몇 마디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다."-104쪽-


"막을 수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 없었을까. 남편이 피흘리는 영혜를 업고 병원까지 달려간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영혜를 제부가 냉정히 버린 것을 말릴 수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작고 파릇한 몽고반점이 남편에게 어떤 영감이라는 것을 주었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 않다. 그 가을 아침 영혜에게 줄 나물을 싸들고 자취방을 찾았을 때 그녀가 본 광경은 상식과 이해의 용량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전날 밤 자신과 영혜의 나신에 울긋불긋한 꽃을 가득 그리고는 몸을 섞는 장면들을 테이프에 담았던 것이다."

-166쪽~167쪽-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밀폐용기의 뚜껑을 닫는다. 보온병부터 차례로 가방에 챙겨넣는다. 가방의 지퍼를 끝까지 닫는다. 

저 껍데기 같은 육체 너머, 영혜의 영혼은 어떤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까. 그녀는 꼿꼿하게 물구나무서 있던 영혜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혜는 그곳이 콘트리트 바닥이 아니라 숲 어디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혜의 몸에서 검질긴 줄기가 돋고, 흰 뿌리가 손에서 뻗어나와 검은 흙을 움켜쥐었을까. 다리는 허공으로, 손은 땅속의 핵으로 뻗어나갔을까. 팽팽히 늘어난 허리가 온힘으로 그 양쪽의 힘을 버텼을까.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영혜의 몸을 통과해 내려갈 때, 땅에서 솟아나온 물은 거꾸로 헤엄쳐 올라와 영혜의 샅에서 꽃으로 피어났을까. 영혜가 거꾸로 서서 온몸을 활짝 펼쳤을 때, 그 애의 영혼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하지만 뭐야.

그녀는 소리내어 말한다.

넌 죽어가고 있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 침대에 누워서, 사실은 죽어가고 있잖아. 그것 뿐이잖아.

-206~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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