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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책<변방을 찾아서>, 신영복의 아름다운 글씨들

책<변방을 찾아서>, 신영복의 아름다운 글씨들



신영복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백북스 대전 강연에서다. 당시 청중들이 가득 메워 선생님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빠져들었던 풍경이 떠오른다.  이때 소주'처음처럼'의 글씨가 신영복 선생님의 작품이란 것을 처음 알았고, 강연노트에 선생님의 사인까지 담아오기도 했다. 이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통해 선생님의 생각과 인품에 감명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나의 독서는 책<변방을 찾아서>에 까지 졸졸 흘러오게 되었다. 이 책은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연재한 '변방을 찾아서'의 글들을 엮은 책이다. 자신이 직접 쓴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가 글씨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낸 글들이 담겨있다. 특히 서울시장실에 걸려 있다는 '서울'이라는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책에서 말하기를 이 글씨는 1995년 서울시에 기증했고, 선생님 스스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글씨라고 한다. 



이 '서울'이라는 작품의 모습이다. '서'와 '울'을 각각 북악산과 한강수로 형상화하고 각각의 의미를 왼쪽에 풀어 썼다. 한 눈에 봐도 '서'라는 글씨에서 북악산의 당당한 형세가 그려지고, '울'이라는 글씨에서 한강수의 유유자적하면서도 굳센 흐름이 느껴진다. 책에서 말하기를 북악은 왕조권력을 상징하고, 한강수는 민초들의 애환이 고단하게 흐르고 있는 모습을 상징하여 만든 글씨라고 한다.


책 제목 <변방을 찾아서>와 어울리지 않는 '서울'이라는 곳에 이 글씨가 있지만, 선생님은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변방의 애환을 시정에 담겠다는 시정철학'을 듣고는 '서울'이라는 글씨에 담긴 이야기를 책에 실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선생님은 책속에서 변방에 있는 자신의 글씨를 찾아다닌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해남의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도서관에 있는 위 사진속 글씨도 그 중 하나이다.  2007년 목동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오숙희 박사의 부탁으로 써 준 글씨라고 한다. 꿈을 담는다는 표현이 참 좋다. 나는 꿈을 어디에다 담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도 그가 쓴 글씨다. 문학비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연재 70주기를 기념한 제 3회 홍명희 문학제 때 건립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임꺽정>을 열심히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더불어 여름방학을 알차게 해주었던 소설이었다. 토속적인 언어와 순 조선향토의 모습이 문장 곳곳에 녹아 있어 읽는 맛이 정겹고 구수했던 소설이기도 했다. 특히 소설속에 나오는 민초들의 삶은 힘없고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변방 그 자체였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 책의 목적이 변방을 찾아나서 변방의 의미를 새롭게 발전시켜보자는 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변방은 흔히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라고 인식하기 쉬우나, 중심부도 변방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변방과 중심부가 균형있게 발전해야 보다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방'과 '중심부'는 어찌보면 대등한 관계의 단어였다. 선생님은 자신의 변방에 대한 생각을 책에서 일부 말하고 있다.


이번의 변방 여행에서 느끼는 감동은 변방 개념의 일정한 발전이었다.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오해이다.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고이 없고,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문명이 없다. 어쩌면 인간의 삶 자체가 변방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이다.

- 13쪽 - 


변방은 그런 것이다. 비록 변방에 있는 글씨를 찾아가는 한가한 취재였지만, 나로서는 취재를 마감하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변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 30쪽 -



이 책은 두껍지 않아서 좋다. 책 표지를 보면 한지를 입혀 놓은 것 같아 고유의 멋이 있다. '글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냐고 새삼 느낀다. '변방'이라는 것은 중심부에서 보면 '변방'일지 모르지만, '중심부'도 변방의 변방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