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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년 전 일본학자가 조선예술에 심취해 쓴 책

책노트

by 이야기캐는광부 2012. 12.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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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떠 있는 별 자신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나, 우리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살면서 때로는 친구, 가족, 선배 등의 나 아닌 사람들이 나 자신의 가치를 더 잘 알고 그 숨은 가치를 발견해 줄 때가 있다. 또 한 나라의 문화예술이 내국인보다는 오히려 외국인에게 더 큰 감명을 주는 경우도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학자가 90여년 전 조선의 예술에 대해 논한 책<조선과 그 예술>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일제 시대에 조선의 미술에 심취해 조선을 20여차례 방문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각종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해가고 허물었던 일제의 만행속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 예술에 대해 찬탄한 글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 중 '사라지려는 조선건축을 위하여'라는 글은 일제의 광화문 철거를 반대하며 조선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고.


그의 책을 읽다보면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한 평가는 종종 엇갈린다. 조선의 문화예술에 외국인 학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일깨워 준 일에 대해서는 고맙다해야 할 것이나, 조선예술의 전문가가 아니었던 그가 펼치는 단편적이고 편협적인 시각은 비판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글을 찾아본 결과 서원대 황혜영 교수님의 글이 그에 대한 평가를 잘 요약해주고 있어 여기 옮겨 본다.


조선의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그가 조선의 예술을 옹호하고 찬탄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다시 제안할 것이다. 우리는 시대적, 역사적 한계를 넘어 진리추구의 눈으로 한 나라 예술의 독자적 가치를 발굴하고자 한 그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 또한 조선의 목공예 비평에 잘 나타나듯이 작위를 벗은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오는 불가사의한 아름다움과 평범한 일상의 예술성을 읽어내는 미적 감각도 주목할 만하다. 

 

거기 덧붙여 정치적, 물리적 위협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거나 침묵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단호하게 글로 견지해나간 진정성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문제는 역설적으로 조선 예술의 본질에 대해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숙명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고통이나 쓸쓸함이 뼛속까지 스며 있[고] (...) 동요와 불안과 고민과 비애가 그들이 사는 세계"라며 한민족의 정서를 비애와 고통으로 규정하고 한민족에 "주어진 운명을 견디고 참으라"고 설득하면서 그 근거를 자연과 역사에서 찾고 있다. 자연과 역사가 예술에 녹아있다는 의견 자체는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가 조선의 예술에 그러한 생각을 추론해나가는 방식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이다. 그는 조선의 자연에 대해 "거기에서는 자연조차도 적막해 보인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님의 글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을 읽는 두 시선>에서 발췌, [링크]



최순우의 책<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을 통해 풍부한 한국의 미를 접하고 나니, 무네요시가 조선의 예술을 비애미로 규정한 점이 다소 불만이었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과연 조선 예술이 비애미라는 틀안에 가두어서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인 가에 대해 의아했던 것이다. 무네요시가 보기에 당시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상황속에서 조선 사람과 조선의 예술이 무던히도 슬퍼보이고 쓸쓸해 보였나보다. 


"대륙과 섬나라와 반도- 하나는 땅에 안정되고, 하나는 땅에서 즐기고, 하나는 땅을 떠난다. 첫째의 길은 강하고, 둘째의 길은 즐겁고, 셋째의 길은 쓸쓸하다. 강한 것은 형태를, 즐거운 것은 색채를, 쓸쓸한 것은 선을 택하고 있다. 강한 것은 숭배되기 위해서, 즐거운 것은 맛보이기 위해서, 쓸쓸한 것은 위로받기 위해서 주어졌다. - 이들 각각은 서로 다른 운명을 부여받고 있으나 신은 모든 것을 미의 나라에서 맺어준다.


조선의 벗이야, 그 운명을 무익하게 저주해서는 안된다. 기도가 많고 동경으로 가득찬, 피안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쓸쓸함에 신은 눈물겨운 마음을 보내고 있다. 신은 위로를 잊지 않는다. "


"나는 조선의 역사가 고뇌의 역사이고 예술의 아름다움이 비애의 미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 민족은 현명하게도 표현에 있어서 필연적인 길을 택하여 형태로 아니고 색채도 아닌 선에 가장 ㅁ낳이 그 마음을 의탁했다는 것을 말했다. 나는 이 추상적인 개설에서 실제의 예증으로 옮기려 한다."

- 92쪽~93쪽 -



나의 의구심이 어디서 왔는지는 위 황혜영 교수님이 무네요시에 대해 '조선예술의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숙명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라고 표현한 문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의 무지로는 교수님처럼 표현할 수 없었는데, 역시 많이 공부하신 교수님들은 다르시다. 





세계 어디서에서나 도자기의 가장 주된 용도의 하나는 꽃병이다. 그런데도 저 도자기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조선에 꽂병이 거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색깔의 꽃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101쪽 - 


또 조선에 꽃병이 별로 없는 것을 두고, 색깔의 꽃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다니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는 아마도 자연속에서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는 아름다운 조선의 정자에는 들리지 않았은 것은 아닐까. 꽃병이 없다고 해서 색깔있는 꽃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니! 오히려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그 꽃을 두고 즐기지 않았던가. 무네요시에게 조선예술을 전부 헤아릴 수 있는 식견이 부족함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이나 오늘날 사람들에게 조선예술의 가치에 대해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그의 책은 칭찬받을만 하다. 특히 도자기에 대한 그의 심미안은 읽는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 중, 일의 도자기 예술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그 중에서 조선 도자기의 특징을 애정을 담아 뽑아 낸 점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조선에는 일본처럼 도자기를 애호하는 풍습이 아직은 없다. 수집가도 없고 차를 마시는 모임 같은 것도 없다. 기물은 훨씬 현실적이다. 일상적인 용품인 것이다. 이 사실은 조선시대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성질이다. 흔히들 일용품은 질이 낮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러기에 굳이 기교를 부리거나 아취를 찾거나 하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작위作爲의 폐단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만듬새가 자연스럽고 솔직하고 질박하다.

- 168쪽 - 



조선이 고려보다 시기적으로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로 볼 때는 이상하게도 조선자기가 고려자기보다 오래된 느낌이 든다. 조선자기에는 말기적인 면이 없고,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자연으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좀더 순수하고, 자연스러우며, 솔직한 곳으로 돌아가 만든 작품이다.

- 255쪽 - 




▲ 30여페이지를 할애해서 펼친 불국사 석굴암에 대한 꼼꼼한 설명은 꼭 읽어볼만 하다. 


또 불국사 석굴암에 대해 이야기한 '석불사의 조각에 대하여 '라는 글은 그 세세한 분석과 통찰에 놀라기도 했다. 이는 책에 실린 많은 글 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수학여행때 한번 쯤은 가봤을 석굴암이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나면 우리 선조들의 슬기에 감탄하고야 만다. 이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야네기 무네요시는 평가가 엇갈리는 학자지만, 책 <조선과 그 예술>을 통해 일본사람보다 오히려 자국의 문화예술에 해 관심이 부족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조선과 그 예술

저자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출판사
신구문화사 | 2006-11-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조선시대 예술 전반의 미와 각 장르별 특징을 고찰한 일본 미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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