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무서웠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고, 오랫동안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조직 역시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4년도에 이 책이 나온 이후로 10여년이 흘렀다.
현재의 정부나 공공기관의 조직의 경우, 책에서 언급한 문제를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절대적 가치가 상실되면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인 것입니다. 이 ‘생각하기 나름’의 철학이 우리 사회에 편만해 있는데도 그것이 애덤 스미스와 그 후계자들의 경제사상의 바탕이 되었다면 우리는 매우 놀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놀랄 것이 없습니다. 그는 『국부론』을 쓰기 훨씬 전, 그에게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순전히 이기심만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행동한다기보다는 양심과 같은 소위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에 따르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서 양심의 근원이 어디이며, 누가 또는 무엇이 관찰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습니다. 아니, 현대에서는 그 관찰자가 아예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란 양심의 눈을 감아 버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미스의 이러한 윤리관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신론(理神論, deism)에 단순하게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그러한 세계관에 뿌리를 둔 몇몇 사람들, 즉 오늘날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대의명분으로 애덤 스미스를 부활시켜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 논리를 미화하려는 소위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을 보면서 저는 한국적 현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사고만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이기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르완다 난민이나 북한 동포의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연민하여 사랑의 쌀 모금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에 감동하기도 하고, 노을 진 석양을 보면서 한 편의 시를 짓기도 합니다. 판자촌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놀라 그들의 삶을 개선해 주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도 합니다. 인간이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거나 더구나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러한 현실적 삶을 정확히 반영해 주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는 전인적 인간관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지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같거나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연의 관리를 위임받은 존재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에게는 자연을 관리해야 하는 선한 관리자로서의 의무가 부여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벤처기업가의 예상대로 사람들이 실제 그것을 필요로 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장래에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업을 시작합니다. 따라서 굉장한 위험부담이 있고, 실패하는 경우가 성공하는 경우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벤처기업은 수요가 있을 만한 곳으로 끊임없이 따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틀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조직구조와 체계가 이리저리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결정도 매우 신속하며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래야 남보다 앞서서 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벤처란 말 자체가 모험이란 뜻이며, 그래서 거기에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 그 속에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조직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하려고 하는 ‘새로운 조직’을 이쯤 이해하고 나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조직의 파라미터(parameter)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어발음은 ‘퍼래미터’지만, 국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파라미터’라고 쓰겠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반면에 의식주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달성하기 조금 어려운 목표를 준 경우에는 긴장 속에서 오히려 삶의 활력을 보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누린다는 겁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행복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뭔가를 이루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나 자아실현감에서 옵니다.
이처럼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서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것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노동은 단순히 호구지책으로서의 의식주만을 위한 노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인 경우에는 사회적 공동선에 공헌한다는 느낌과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갖게 될 것이며, 자기직무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도록 조직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개인이 생리적 필요를 넘어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은 조직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풍요의 선순환(善循環)이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조직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하며, 그것도 수요자에게 매력적인 가격, 높은 질, 만족스런 서비스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직이 이러한 필요충족성의 파라미터를 갖고 있을 때 비로소 조직으로서의 효과성을 갖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둘째, 조직은 항상 유연해야 합니다. 유연성이란 조직이 조직구성원의 내적 변화 가능성과 환경의 외적 변화 가능성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여기서 내적 변화란 구성원들의 성향, 능력,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조직구조와 과정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외적 변화에 대한 유연성은 경쟁이 점점 심화되기 때문에 사회체계의 변화(Merger & Acquisition 또는 전략적 제휴의 보편화 등)에도 적절히 대처할 만한 적응력을 갖추어야만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 이러한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든 구성원 각자에게 고유한 직무를 주고 그 직무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료 조직의 특성은 고유직무가 각 직위와 개인에게 주어져 있지 않고 집단에 부여돼 있기 때문에 직무의 공유형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이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도 경험이 많은 윗사람에게 ‘어찌 하오리까’라고 물어서 결정하는 품의제도는 정보사회에서는 아주 부적합한 제도적 장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설명될 단위업무담당제(work unit system)로 하루 속히 전환되어야 합니다.
또한 서열형 조직에서는 직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창의성을 갖춘 인물보다는 상하 내지 동료관계에서 상호의존성과 인간관계의 매끄러움을 중시하는 인물을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그래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저는 이러한 조직과 사회는 조만간 세계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어쨌든 품의제도의 문제점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품의제도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에서는 장관이 어떤 부하에게 업무지시를 내리면 업무지시를 받은 관료는 자신의 직속부하에게 동일한 업무지시를 내리고, 그 부하는 다시 자신의 부하에게 똑같은 과정을 밟아 맨 말단 공무원에게까지 업무지시가 전달됩니다.
맨 마지막에 업무지시를 전달받은 공무원은 그 업무지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검토하여 보고서나 실행문을 만들어 자신의 상관에게 ‘어찌 하오리까’ 하고 문의합니다. 문서를 최초에 만드는 행위를 기안(起案)이라고 하며, 이 기안된 문서를 품의서(稟議書)라고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상관은 부하가 만든 품의서를 읽어 보고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품의내용을 고쳐서 부하에게 돌려줍니다. 그 부하는 상관이 고친 그대로 품의서를 다시 만들어 상관에게 올립니다. 상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품의서가 꾸며졌으면, 그 품의서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어 줍니다. 이것을 결재(決裁)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그 품의서가 상관의 상관에게 다시 ‘어찌 하오리까’ 하고 물어보는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 상관도 역시 마음에 들면 그냥 서명해 주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앞에서 했던 방식대로 품의서를 고치도록 지시해서 품의서를 다시 만들어 위로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계층의 결재 단계를 밟게 되는데, 중요한 사안일수록 결재 단계가 길어집니다.
결재라는 말은 품의제도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영어단어에는 결재라는 말이 없습니다. 금융실명제라는 용어가 영어에 없듯이 말입니다. 서구인에게 의사결정이란 각 개인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결재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금구좌를 가명 또는 차명으로 한다는 것이 일상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해경이 해난사고 발생 시 긴급한 구조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의사결정(decision-making)이란 본시 문제해결을 위한 결단을 말합니다. 이것을 독일어로 엔트샤이둥(Entscheidung)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굳이 의사결정을 독일어로 설명하는 것은 영어표현보다 그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Entscheidung)은 분리하여 떼어낸다는 의미의 명사인 샤이둥(Scheidung)에다 떼어내어 다른 상태로 향한다는 의미인 엔트(ent)를 붙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따라서 의사결정이란 현 상태에서 떼어내어 다른 상태로 만들려는 개인의 인격적 의지형성(意志形成, Willensbildung)을 의미합니다. 의지형성은 본능이 아닌 인격을 갖춘 인격체에게만 가능하며, 비인격적 존재는 의지형성이 불가능합니다. 결단은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46
따라서 조직이 의사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조직은 인간의 의사결정을 위한 보조적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인격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체인 조직이 결정하는 것처럼 의제(擬制)되어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그 의사결정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조직 전체가 책임지도록 의사결정체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품의제도이며 총체적 부패를 감싸고 있는 핵심적 체계의 하나입니다.
이 품의제도는 일본의 35년에 걸친 식민지 통치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의 하나입니다.47 일본 사람들에게는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그들 특유의 기질 때문에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제도가 적합할지 모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오히려 미국의 행정학자들은 품의제도를 가리켜 ‘위로 떠넘기는 제도(upward referral system)’라 하여 아랫사람의 창의력을 억제하고 권위주의적이며 시간만 낭비하는 비능률적인 제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행정학자들은 부분적인 개선방안으로 품의제도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론과 현실의 차이, 한국적 속성과 일본적 속성, 제도와 제도 운영의 차이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관료들에게 일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상관에게 결재를 받는 일입니다.
처리해야 할 업무의 권한과 책임이 하위직에 고유하게 배분되지 않은 채 거의 모든 업무가 윗사람에게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장관은 자신의 고유한 업무를 수행할 시간이 없고 바쁘게 보내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간 관료들도 장관을 가급적 자주 만나 자신들의 입지를 확대해 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그런 상황이니 고위 관료들이 어떻게 전문성을 길러 장기적인 정책 구상을 하겠으며 자기계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관료들 대부분이 그저 하루살이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세 번째는 상관이 부하들의 의사결정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장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결정적인 단점입니다. 권한을 상부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3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도자의 인격장애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조직사회에서 권한이 상위층으로 집중화되는 현상은 하위층의 자율성을 제거하여 창의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활기 없는 병든 조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조직이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그 조직은 반드시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권한의 적절한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조직구성원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상하 간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정보의 공유는 품의제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은 품의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품의에 의하여 정보를 공유하는 데 드는 희생과 비용을 감안하면 이것을 과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품의제도는 앞에서 말한 대로 단점을 장점으로 잘못 이해한 것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품의제도는 그 자체 내에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대한 결함이란 다음의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①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② 합리적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③ 조직의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④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⑤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
⑥ 중요한 결정은 품의대상이 아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둘째, 품의제도는 어떤 사람이 회의나 토론을 통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의사결정이 최초기안자에서 중간결재자들을 거쳐 최종결정자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므로, 각자 서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여러 대안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하여 최선의 대안을 찾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방식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아랫사람이 품의서에다 미리 결론을 써서 결정권자의 재가(裁可)를 받는 형식이므로 항상 결정권자의 의중을 잘 파악하여 품의서를 작성해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의를 통해 최종결정자가 의견을 수렴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행정조직에 있어서의 회의란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아니라 상관의 일방적 지시로 끝나는 게 일반적입니다. 회의참석자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 하더라도, 권위주의적 계층구조의 층층시하에서 부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윗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이야기들뿐입니다. 어떠한 회의도 회의답게 진행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회의가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면우 교수는 이것을 ‘꽃마을 회의’라고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이러한 품의제도의 폐쇄성은 우리 사회를 집단주의화하고 있습니다. 외부인에 대해 항상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합니다. 우리끼리만 살자는 집단이기주의를 촉진하며, 혈통주의로 변질되기도 합니다.54
정부가 박사학위를 소지한 유능한 인재들을 공무원으로 대거 특별 채용했었는데, 그들이 공무원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몇 년 만에 대부분 퇴직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관료사회가 지닌 폐쇄성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넷째, 품의제도 아래에서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의사결정이 특정한 개인, 즉 독립적 인격체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비인격적인 조직체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책임도 어떤 인격체가 아닌 조직 전체에게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누구의 인격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돼 있다는 말입니다.
커다란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교묘히 꾸며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 즉 그 조직의 장(長)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곤 합니다.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성수대교 사건만 해도 32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련 회사는 고사하고 관련 공무원들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중대한 책임이 있겠다 싶은 사람들도 금고형을 선고받았을 뿐이었습니다.55 판사들이 볼 때도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책임이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이에 대해 중앙정부에서 항공교통분야 전문가로서 국장급 관료와 항공사 경영진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신동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행정은 기본적으로 일반행정가(generalist)에 의한 관리에 의존하고 있다. 일반행정직의 경우 장·차관 등 최고위직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데 비하여, 전문기술직은 승진 기회가 상당한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 데서 이러한 사실이 쉽게 입증되고 있다. 이러한 일반행정가 위주의 관리체계는 비단 정부조직에서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기업 나아가 사기업에서까지 지배적인 것으로 돼 있다. 전문성의 부족 및 전문가의 경시풍조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타국에 비하여 열위에 있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56
이처럼 행정전문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행정에 관한 연구들은 대부분 행정관료의 전문화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연구보고서는 대부분 전문화에 따르는 관료화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행정관료들은 전혀 전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전문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다시 한 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최종단계 농산물 협상에서 한국은 전문성 부족과 무지로 인하여 양허 내용을 일방적으로 제출했다가 다른 협상참여국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수정했습니다. 농림수산부의 담당국장은 7년의 협상기간 중 7번이나 교체됐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일을 문서로 처리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요한 일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알 수 없도록 제도화돼 있습니다. 따라서 잘된 일은 자기가 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결과가 나쁘게 나온 것은 나와는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우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그 증거를 대라고 우길 것이며 나중에 가서는 포괄적으로 도덕적 책임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은 모두 말로 처리하지, 문서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문서주의에 의해 처리하는 것이 품의제도인데도 말입니다.
세월호 사건 바로 다음날 청해진해운은 곧바로 ‘언딘’과 독점적 구호구난계약을 맺었습니다. 바로 해경에서 알려 준 업체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해경의 실무자들은 해운사에 전화해서 어떤 업체와 계약을 맺으라고 통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품의제도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국가지만, 그 진실은 문서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그러므로 이제 해결책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 왔던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을 버리고 단위업무담당제(work unit system)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으로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이것은 프로젝트유닛시스템(project unit system)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교육훈련을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목적·비전·가치를 점검하고 그것에 부합하도록 실행하기 위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구인들이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방식을 단위업무담당제도라고 명명했습니다. 누구도 이런 방식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서구인들에게 의사결정이란 항상 각 개인에게 주어진 직무의 권한과 책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미성년자가 아닌 한,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을 대신해 주는 경우란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하는 각자의 직무수행방식은 그냥 의사결정이라고 부르며, 특별한 명칭이 부여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구인들이 하는 의사결정방식을 우리의 낡은 품의방식과 비교하여 단위업무담당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단위업무담당제에 의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단순화시켜 알아보겠습니다. 상관은 자신이 내려야 할 의사결정 사안을, 부하들 중 그 사안에 대해 가장 해박한 인물에게 검토안을 작성하도록 업무지시를 내립니다. 이때 품의제도에서처럼 위계질서에 따라 업무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사안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골라 직위에 관계없이 업무검토지시를 내립니다.
예를 들어 장관이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칩시다. 장관이 그 사안에 대해 부하들 중 서기관이 제일 적임자라고 판단하여 그에게 검토안을 지시하면, 서기관은 장관의 업무지시를 자신의 부하들에게 재차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검토안을 작성하여 장관에게 직접 보고합니다. 장관은 보고안을 읽어 본 다음 자신의 책임 하에 의사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최동석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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